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옥상의 구름]
    공상과학 에세이 2026. 6. 22. 19:40

    2편. 밤의 범인은 낮에 있었다

    서윤은 다음 날 점심시간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새벽 세 시의 지도를 보고 난 뒤부터,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떠나지 않았다.

     

    왜 해가 진 뒤에도 도시는 뜨거운가.

     

    밤은 조용했다.
    차도 줄고, 사람도 줄고, 간판 불빛도 꺼진다.
    그런데 열은 줄지 않았다.

     

    그렇다면 밤은 결과일 뿐이었다.

     

    원인은 다른 시간에 있었다.

     

    서윤은 옥상 문을 열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햇빛이 정면에서 쏟아졌다.
    바람은 있었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바닥은 빛을 튕기는 게 아니라, 빛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회색 방수층은 뜨거웠고,
    실외기 옆 공기는 더 뜨거웠고,
    난간은 손을 오래 대고 있기 어려울 만큼 달궈져 있었다.

     

    서윤은 잠깐 눈을 감았다.

     

    도시가 뜨거운 건 태양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태양은 도시만 비추지 않는다.
    강도 비추고, 산도 비추고, 논도 비춘다.

     

    그런데 왜 밤이 되면 산은 식고,
    도시는 식지 못할까.

     

    답은 태양이 아니라 도시의 표면에 있었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유리 외벽.
    검은 지붕.
    촘촘하게 붙은 건물들.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골목.
    쉼 없이 돌아가는 실외기.

     

    도시는 열을 받는 곳이 아니라,
    열을 저장하는 구조가 되어 있었다.

     

    낮 동안 받은 빛과 열이
    도로에 남고,
    벽에 남고,
    옥상에 남고,
    그렇게 남은 열이 밤이 되어도 천천히 도시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새벽 세 시의 붉은 지도
    밤의 지도가 아니었다.

     

    그건 사실,
    낮이 남긴 영수증이었다.

     

    서윤은 난간에 기대 도시를 내려다봤다.

     

    멀리 보이는 유리 건물은 햇빛을 번쩍이며 반사하고 있었고,
    그 아래 도로는 숨 막히게 밝았다.

    차량 위로 일렁이는 공기는 눈에 보일 만큼 흔들렸다.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밤의 더위를 보고
    밤을 식힐 방법부터 찾는다.

     

    하지만 어쩌면 질문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밤을 식히는 방법이 아니라,
    낮에 덜 뜨거워지는 방법.

     

    문제는 밤이 아니었다.
    문제는 낮이 도시 안에 너무 오래 남는다는 것이었다.

     

    옥상의 구름 2편

     

     

    서윤은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쓰지 못하다가,
    천천히 한 줄을 적었다.

     

     

    밤의 범인은 밤에 있지 않았다.
    범인은 낮에 있었다.

     

     

    그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밤을 식히려 하지 말고,
    낮의 열이 도시 안에 쌓이지 않게 해야 한다.

     

     

    그 순간,
    새벽 세 시의 붉은 지도와
    지금 눈앞의 한낮 풍경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밤의 열은 낮의 잔여물이었다.

     

    그렇다면 해답도 분명했다.

     

    새벽에 식히는 장치가 아니라,
    한낮의 햇빛이 도시 표면을 직접 달구기 전에
    먼저 가로막는 장치.

     

    도시 위에
    잠깐이라도 그늘을 만들 수 있다면.

     

    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너무도 맑아서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저 하늘을 좋은 날씨라고 불렀다.

     

    하지만 서윤은 처음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저건 좋은 하늘이 아니라,
    도시를 하루 종일 달구는 완벽한 가열판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서윤의 머릿속에 아직 형태도 없는 하나의 그림이 떠올랐다.

     

    옥상 위에 돔이 있고,
    그 안에서 하얀 운무가 만들어지고,
    그 운무가 도시 위로 올라가
    햇빛보다 먼저 그림자를 만드는 장면.

     

    아직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서윤은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가장 현실적인 답처럼 느껴졌다.

     

    밤의 범인은 낮에 있었다.

     

    그렇다면
    도시를 구할 첫 번째 시간도
    밤이 아니라 낮이어야 했다.

     

     

    <다음글>

    2026.06.22 - [공상과학 에세이] - [옥상의 구름]

     

    [옥상의 구름]

    3편. 공모자들서윤은 팀장의 전화를 끊고도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회사 건물 뒤편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큰길은 너무 밝았다.차가 지나가고, 버스가 서고, 유리 외벽이 햇빛을

    ideas7867.tistory.com

     

     

    <이전글>

    2026.06.21 - [공상과학 에세이] - [옥상의 구름]

     

    [옥상의 구름]

    1편. 새벽 3시의 붉은 도시 서윤은 새벽 세 시의 지도를 싫어했다. 낮의 지도는 차라리 정직했다. 태양이 있었다.도로가 달아올랐다.건물 옥상이 붉었다.유리 외벽은 빛을 튕겨냈고, 아스팔트는

    ideas7867.tistory.com

     

     

    '공상과학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상의 구름]  (0) 2026.06.23
    [옥상의 구름]  (0) 2026.06.22
    [옥상의 구름]  (0) 2026.06.21
    FOG TO RAIN SERIES  (0) 2026.06.18
    FOG TO RAIN SERIES  (0) 2026.06.1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