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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아이디어 회고록] - 하인리히실행 구조 비평 2026. 6. 18. 19:07
300·29·1
건설현장은 왜 이 숫자를 기록하지 못하는가
아차사고를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숫자 하나로 돌아왔다.
300·29·1.
하인리히 법칙이다.
큰 사고 1건 뒤에는 29건의 작은 사고가 있고,
그 뒤에는 300건의 아차사고가 있다는 말이다.처음에는 이 숫자를 그냥 안전교육에서 많이 듣는 말 정도로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가끔 나온다.
“아차사고를 줄여야 중대재해를 막을 수 있다.”
“작은 위험을 놓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사고 전에 반드시 신호가 있다.”말은 맞다.
그런데 막상 건설현장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그 300건은 어디에 있을까.
건설현장에는 위험한 장면이 없어서 300건이 안 보이는 걸까.
아니다.
있다.
발을 헛디딜 뻔한 장면도 있고,
자재가 떨어질 뻔한 장면도 있고,
장비 동선에 사람이 들어간 장면도 있고,
개구부 근처에서 휘청한 장면도 있고,
사다리가 흔들린 장면도 있다.다만 기록되지 않을 뿐이다.
아차사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차사고는 있는데,
말하지 않고,
적지 않고,
공유되지 않고,
조치되지 않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지 못한다.그러면 300은 사라진다.
종이에 없고,
데이터에 없고,
회의에 없고,
다음 TBM에도 없다.그렇게 사라진 300 뒤에서 29가 나오고,
언젠가 1이 나온다.그래서 생각을 뒤집어봤다.
하인리히 법칙을 그대로 따라가면 이런 말이 된다.
1건의 중대사고 뒤에는 29건의 경미한 사고와 300건의 아차사고가 있다.
그런데 예방을 하려면 반대로 봐야 한다.
300건의 아차사고를 잡으면,
29건의 작은 사고를 줄일 수 있고,
결국 1건의 사망사고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그게 이 아이디어의 출발이었다.
그래서 제목도 숫자로 가고 싶었다.
300·29·1
설명이 많은 제목보다 숫자만 던지고 싶었다.
예전 대선 때 안철수 후보 포스터가 떠올랐다.
후보 포스터라면 보통 학력, 경력, 공약, 구호가 빽빽하게 들어간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장면이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신선했다.
안전을 말할 때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인리히 역발상 긴 문장보다 숫자 하나.
300·29·1
그리고 부제는 이렇게 붙였다.
건설현장은 왜 이 숫자를 기록하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문제는 숫자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록이었다.
아차사고를 수집하려면 근로자의 역할이 많이 필요하다.
위험을 가장 먼저 느끼는 사람은 대부분 관리자보다 근로자다.
실제로 발을 헛디딜 뻔한 사람.
자재가 떨어지는 걸 본 사람.
장비가 가까이 지나가서 놀란 사람.
안전난간이 흔들리는 걸 만진 사람.
개구부 덮개가 불안하다고 느낀 사람.그건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 먼저 알기 어렵다.
안전관리자가 모든 공정을 따라다닐 수도 없다.
관리감독자가 모든 순간을 볼 수도 없다.
원청 직원이 모든 위험을 먼저 발견할 수도 없다.결국 아차사고의 시작점은 근로자다.
근로자가 말해야 한다.
근로자가 기록해야 한다.
근로자가 참여해야 한다.그런데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근로자가 왜 해야 하는가.
먹고살기도 바쁜데,
오늘 일 끝나면 다른 현장 갈 수도 있는데,
괜히 말했다가 작업이 멈추면 눈치 보이는데,
위험하다고 말해도 바뀌는 게 없다고 느끼는데,
왜 굳이 아차사고를 적어야 할까.이 질문을 피하면 안 된다.
안전은 중요하니까 참여해야 한다.
이 말은 맞지만, 현장에서는 약하다.
현장은 명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근로자의 참여를 원한다면, 근로자에게도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를 보면 그 부분이 더 분명하다.
일본은 KY 활동처럼 작업 전에 위험을 예측하고, 근로자가 직접 위험을 적는 문화가 있다.
근로자가 한 줄이라도 쓰고 작업에 들어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싱가포르도 아차사고와 실제 사고를 줄이기 위해 근로자 참여와 보상 구조를 같이 움직이는 느낌이 강했다.
외국인 근로자 비중도 높다.
한국 건설현장도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
어떤 현장은 절반이 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그런데 싱가포르는 그 비율이 더 높았다.
차이는 관리 구조였다.
기숙사도 있고,
혜택도 있고,
참여를 유도하는 장치도 있었다.반면 한국은 이상하게 다른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출입국 단속은 나오고,
외국인 근로자는 도망가기 바쁘고,
현장은 인력난에 쫓긴다.이 구조에서 “아차사고를 적극적으로 신고합시다”라고 말하면 얼마나 작동할까.
근로자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칭찬 말고,
실제로 체감되는 보상.처음 떠올린 것은 건설근로자공제회였다.
건설근로자는 출근할 때마다 공제회에 기록이 쌓인다.
하루 일하면 일정 금액이 적립된다.
대략 6천 원 정도가 쌓이는 구조다.그런데 이 돈을 실제로 타는 시기가 애매하다.
60세 이후였던가.
어쨌든 현장에서 하루하루 일하는 근로자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오늘 위험을 봤는데,
오늘 참여했는데,
보상은 몇십 년 뒤에나 체감된다.그건 아차사고 참여 보상으로는 너무 멀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공제회 구조에 안전 점수를 붙일 수 없을까.
출근 기록이 이미 있다면,
안전 참여 기록도 붙일 수 있지 않을까.분기마다 안전 점수를 쌓고,
그 점수를 지역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게 하면 어떨까.예를 들어 분기 동안 사고 없이 현장이 마무리되고,
근로자가 TBM 참여, 위험 체크, 아차사고 제보, 개선 확인에 일정 수준 이상 참여하면 안전 포인트를 지급한다.그 포인트를 상품권으로 바꾼다.
현장에 남는 건 단순 출근 기록이 아니라 안전 참여 기록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가 있었다.
분기도 길다.
직접 참여를 유도하려면 보상이 너무 늦으면 힘이 떨어진다.
오늘 위험을 말했는데,
보상은 분기 끝나고 받는다.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차사고 수집을 활성화하기에는 조금 느리다.
그래서 앱 구조를 생각했다.
근로자가 앱을 사용한다.
TBM 때 자기 공종을 선택하고,
오늘 작업 위험을 체크하고,
아차사고를 짧게 기록하고,
관리자가 조치하고,
조치 결과가 다시 남는다.그러면 참여 데이터가 생긴다.
이 앱 비용은 어디서 나올까.
여기서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생각했다.
안전관리 앱을 현장 안전활동에 필요한 도구로 보고,
산안비에서 앱 사용료를 처리하는 구조다.회사는 산안비에서 비용이 나가니 별도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근로자는 앱을 통해 안전활동에 참여한다.
앱 운영 수입 일부는 다시 리워드 재원으로 돌린다.
아차사고를 잘 기록한 근로자,
위험 체크를 성실히 한 근로자,
조치 확인에 참여한 근로자,
안전 참여도가 높은 근로자에게 리워드를 준다.이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수단처럼 보였다.
현장에는 이미 우수근로자 표창 같은 것이 있다.
월마다 우수근로자를 뽑는 현장도 있다.
그런데 기준이 애매할 때가 많다.
오래 일한 사람.
원청 말 잘 듣는 사람.
관리자가 보기 좋은 사람.
현장 분위기를 잘 맞추는 사람.물론 그런 것도 나름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안전 우수근로자라면 기준이 달라야 한다.
안전을 잘 지키는 사람.
위험을 잘 발견하는 사람.
아차사고를 잘 기록하는 사람.
TBM에서 자기 작업 위험을 성실히 확인하는 사람.
위험 조치 확인에 참여하는 사람.이런 사람이 안전 우수근로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안전화 하나를 주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번 달 안전 우수근로자입니다.”
왜?
“아차사고 3건을 제보했고, 그중 2건이 조치 완료됐습니다.”
“TBM 위험 체크 참여율이 높았습니다.”
“작업 전 위험 확인을 꾸준히 했습니다.”
“동료 작업자의 위험을 제보해 개선으로 이어졌습니다.”이렇게 데이터가 있으면 말이 된다.
그냥 원청 말 잘 들은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안전에 참여한 사람이 보상을 받는 구조가 된다.건설공제회와 연결하는 방식은 더 긴 호흡의 보상이다.
분기 단위 안전 출석률.
현장에 꾸준히 출근하고,
TBM에 참여하고,
위험성 체크를 하고,
아차사고를 기록하고,
해당 분기 동안 사고 없이 현장을 마무리하면 일정 포인트를 지급한다.그 포인트는 지역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근로자에게도 이유가 생긴다.
그냥 “안전합시다”가 아니다.
참여하면 기록이 남고,
기록이 점수가 되고,
점수가 보상이 된다.그리고 그 데이터는 회사와 현장에도 남는다.
어떤 공종에서 아차사고가 많이 나오는지.
어떤 작업에서 위험 체크가 반복되는지.
어떤 위험은 제보만 되고 조치가 늦어지는지.
어떤 현장은 참여율이 높은지.
어떤 관리감독자는 조치 완료율이 높은지.이게 쌓이면 300이 보인다.
그전까지는 300이 없었다.
사실은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근로자 머릿속에 있었고,
현장 구석에 있었고,
작업 중 놀란 순간에 있었고,
퇴근하면서 잊힌 말 속에 있었다.그걸 데이터로 끌어내려면 참여가 필요하다.
참여를 만들려면 보상이 필요하다.
보상을 만들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을 만들려면 기록이 필요하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다.
결국 아차사고는 단순한 신고 제도가 아니다.
근로자가 위험을 말할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그 말이 조치되고,
점수화되고,
보상으로 이어지고,
다음 작업에 반영되는 구조다.그 구조가 없으면 아차사고는 또 하나의 종이가 된다.
그리고 건설현장에는 이미 종이가 너무 많다.
300·29·1
나는 이 숫자를 거꾸로 보고 싶었다.
300을 먼저 잡자.
그러면 29가 줄고,
언젠가 1도 줄어들 수 있다.하지만 300을 잡으려면 근로자가 참여해야 한다.
근로자가 참여하려면 “좋은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 맞는 보상과 기록 구조가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한 아차사고 데이터화의 시작이었다.
감 말고, 구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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